삶의 보물찾기/음악에서 보물찾기

김민기를 떠나보내며

지지파 2024. 7. 2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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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의 부음을 듣고, 하루 종일 관련 동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건 고 노무현 대통령 이후 처음인 듯싶다. 대학교 1학년 때 김민기 테이프 1~3집(으로 기억했는데 4집도 들었던 거 같고.. 기억이 가물가물 거린다.)을 아침저녁 학교 오가는 3시간 동안 늘 듣고 다녔다. 그리고 군대에 갔다 와서 지하철 1호선을 보고 너무 재미있어했고, 교사가 되어서는 '모스키토'라는 청소년이 정당을 만드는 뮤지컬에 빠졌던 기억도 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개똥이도 본 거 같다.(아련하게 개똥이 뮤지컬 장면과 '날개가 있다면'이라는 노래 연결되어 있다) 그냥 믿고 보는 김민기 뮤지컬, 김민기 노래였다. 

SBS 다큐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서  '김민기 노래를 듣고, 안 좋아하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니냐'라고 했는데 테이프에 있는 노래 모두가 너무 좋았다. 그런데 김민기 노래를 좋아하게 된 건 성당에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배우고 나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주일학교 담임 선생님은 건국대학교를 다니던 배 선생님이셨다. 아마 그 때 선생님께서 기타를 치시면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들었을 때의 감동과 충격은 대단해서, 중학교 들어가면서 기타를 사달라 졸라대었고, 기타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천부적으로 박자 감각이 없고, 음감도 없기 때문에 늘 그냥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 부르고 쳤다. 지금도 그렇다. 그렇게 양희은을 알게 되었고, 테이프를 사서 늘어지게 들었다. 난 지금도 양희은 목소리와 노래를 좋아한다. 그리고, 아침이슬의 작곡가가 중학교 성당에서 배운 노래 '친구'의 작곡가와 같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중학교 때 중고등학교 주일학교 축제 이름은 '샛별의 밤'이었다. 중학교 1,2학년 때 선배들이 연극, 노래하는 하는 모습은 너무 멋있었다. 그때 했던 연극 중 하나가 '방황하는 별들'이었고, 또 하나는 '금관의 예수'였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라는 가사와 노래는 당시 성직을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큰 사명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김민기 테이프 전체를 사서 들었고, 노찾사, 조국과 청춘, 꽃다지와 같은 민중 가요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김광석을 알게 되었다. 군대 제대하고 친구와 함께 콘서트를 꼭 가자고 약속한 날이 되기 전 세상을 떠났지만, 김광석의 노래는 스무 살 초반 나의 정서를 지배했다. 그리고 또 무지하게 많이 들은 것이 '김영동'의 국악곡이었다. 선 1, 선 2를 하도 듣다 보니 아버지는 내가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갈까 봐 걱정하셨다고 한다. 사실, 지금도 나는 고민을 하기는 한다. 

그리고 학전이 문 닫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아쉽다 정도 생각했다. 그런데 김민기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실 나에게 김민기의 노래는 투쟁가는 아니었다. 한국 사회 구석 구석 아픈 이들을 노래하고, 희망을 주는 그런 노래였다. 그래서 그냥 들으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명을 느끼고 그랬다. 그랬던 그가 떠났다. 

SBS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유튜브에서 봤다. 세상에 노찾사의 프로듀서가 김민기였구나, 김광석에게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라 했던 것도, 김광석이 노래한 곳이 학전이 이유도 김민기였구나, 세상에 김민기가 유아원 건립을 위한 공연에서 합주하셨던 분이 김영동이었구나. 나는 김민기와 함께 살았구나. 김민기는 내 젊은 날의 빛이었구나.

 

싸이월드 첫페이지를  꾸미는 것이 유행이었다. 나는 김민기의 '봉우리'를 구입해서 첫 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어제는 다큐를 보면서 중학생이 된 아들에게 앞으로 삶이 힘들 때 '봉우리'라는 노래를 들으라 했다. 의지가 약해질 때는 상록수를 들으라 했다. 김민기의 노래를 듣고, 세상의 아픔에 공감하길 바란다 했다. 그렇게 그의 노래는 나를 키웠고, 내 아이를 키울 것이다. 

 

그가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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