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보물찾기/사회문화 수업에서 배우는 지혜

왜 나이가 들면 잔소리가 많아질까?-사회화와 유전자

지지파 2021. 5. 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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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나이가 50이 다 되어 간다. 와~ 말도 안 된다. 내가 오십이라니.

난 언제나 상큼하고 풋풋하게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어디 놀러 가서 사진을 찍으면 이건 영락없는 중년 아저씨다. 

더 이상 사진을 찍고 싶지 않고, 그 사진을 다시 보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난 언제나 개방적인 사고를 가질 줄 알았다. 물론, 내가 고집이 세고, 엄격한 부분이 있으나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잘 수용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한 번 말을 시작하면 꽤 오래 잔소리를 한다. 마침 엄청난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아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주려고 한다. 두 번 다시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처럼, 그리고 너희들은 두 번 다시 이런 훌륭한 이야기를 듣지 못할 것이라는 듯이 말이다. 분명 꼰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비장한 마음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나면 나는 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빠진다. 다시 말해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죽음 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하는 내 아이들에게 내가 평생 몸으로 부딪히며 배워 온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 거다. 

내가 좋아하는 시네마 천국과 죽은 시인의 사회를 같이 보고 싶고,

'피노키오는 사람일까 인형일까'(양운덕 저, 피노키오의 철학)을 같이 읽고 철학사와 철학의 주요 질문들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싶고,

한국사와 중국사의 흐름을 쭉 설명해 주고 싶고, 

종교의 가르침이 주는 오묘함에 대해 느끼게 해 주고 싶고,

심리학과 상담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인간에 대한 이해를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러나 당연히 아이들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늙은이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가르치면 나처럼 많이 헤매지 않아도 될 텐데... 삶이 힘들 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의지가 될 텐데.... 내가 없어도 잘 견딜 수 있을텐데... 뭐 이런 궁상맞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분명 그랬을 거다. 노인은 가장 많은 농사 관련 지식을 가진 사람이고, 그의 경험은 하나의 교과서요, 백과사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인을 공경하고, 돌아가시는 것이 아쉬웠을 거다. 노인은 나없이 살아갈 자녀들을 보면 걱정이 되고, 젊은이들이 못믿더웠을 것이며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나만큼 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말할 필요가 있었을 거다. 지금처럼 유튜브가 있어 유선생님이 늘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것이 노인의 잔소리일 것이다. 산다는 것이 다 그렇다, 살아보니 다 그렇다는 지혜와 더불어 이것 저것 못미더운 자식 놈들 제대로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자 종 유지 및 번성을 위한 유전자의 명령일 것이다.

 

그러니 윤아, 후야 아빠의 잔소리를 너무 지겨워 하지는 마렴. 아빠도 꼰대, 설명충라고 불리우고 싶은 마음은 눈꼽 만큼도 없지만, 유전자가 자꾸 시키는 거니까. 그것이 아직까지는 인간 종을 유지하는 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듯 하니까. 그리고 조금씩 아빠의 능동적 의지로 유전자의 힘을 이겨내고 더 개방적인 태도로, 더 젊은이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고 더 배우려고 할게. 그러면 유전자도 알겠지. 무엇이 인간 종 유지 번성에 도움이 되는지.

 

한동안 잔소리가 많았던 아버지와 사람이 사는 게 다 그렇다며 뭔 가르쳐주려 했던 어머니는 내게 아무 말씀도 안 하신다. 내가 나이가 들고, 내 몫을 하고 살고, 이제는 당신들보다 더 할 수 있고 아는 것이 많아지면 그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진정 세상을 관조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느라 애쓰는 자녀를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자식들이 탈없이 무사히 행복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늙어 가겠지. 더 늙어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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