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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랑3 - 예수님의 밀알의 비유

지지파 2019. 8. 1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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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친구가 예수회 신부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예수회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수도원에서 공부하고, 호주에 가서 한참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또 미국으로 가서 한참을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 성격에 맞지 않은 일을 하였는데 

다시 미국으로 가서 사목을 하라고 해서 미국으로 갔다. 

나는 베트남에 있다가 잠시 한국으로 갔을 때, 그리고 그 친구는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서 일을 한 2018년 1월에 만났다. 그 친구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의 논문에 대해 물어 본 거 같다. 역시 시간이 지나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세상 만물의 창조주로서 존재자 '신'이 아니라 태초 '사랑'이 있어 세상이 창조되었고 존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던 거 같다. 다시 말해 '사랑'이 세상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사실, 내가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은 이유는 자발적 냉담 중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냉담이 아니라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불신하고 있었고 성당에 그만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세가지 정도였다. 

 

첫째, 세월호를 보면서 내가 아는 '사랑의 하느님'이 어찌 이리 잔인할 수 있는가.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라는 의심이었다. 

 

둘째, 아내의 임용 고시 불합격이 계속 되면서 아들이 여섯살 때 했던 말 '하느님은 엉터리다'라는 말에 깊게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아내의 공부가 길어질 수록 가족들의 합격에 대한 염원은 강해졌고, 하느님께 매달림 또한 커져갔다. 성지 순례를 가게 되고, 성지 순례에서 헌금을 많이 내고 싶어지고 그리고 돌아올 때면 무지개를 보고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을 거 같은 기분이었지만 결과는 또 불합격이었다.

'에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신, 안 믿어~' 이건 아니었다. 내 신앙이 기복 신앙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것은 하느님과 나의 건강한 관계가 아니라 생각되었다. 조금 더 인간답게,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그렇게 신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신을 이해하고, 닮고, 배우고 싶었다. 그것이 오강남 교수가 저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에서 말한 '표층 종교' 생활이 아니라 '심층 종교' 생활이라고 생각했다. 

 

셋째, '신 없는 사회'라는 책은 북유럽 국가 사람들이 더 이상 신앙으로써의 종교를 가지지 않고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오강남 교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오교수는 북유럽 국가들은 신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일을 신이 없기 때문에 인간들끼리 해결해야 하고, 그것이 복지가 발전한 이유라고 설명한 것으로 기억한다. 비슷한 시기 동양철학을 비롯한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었는데 강신주는 인문학자 '신'을 믿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인간의 힘과 인간의 의지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본 것 같다. 강신주의 말이 너무 강경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시험을 보는데 하느님께 합격을 비는 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답지 않다 생각하였다.

 

뭐 이런 저런 이유, 특히 베트남에 와서 성당에 다니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냉담 중이었다. 

 

그런데 다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은 사랑을 하게 되면 변하게 된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던 '자아'가 변하는 것이다. 대학원에서 자아초월상담심리를 전공했는데 자아초월이란 자아의 변용이다. 여기서는 종교적, 영성적 변용을 의미하지만 사랑으로 변화는 것 역시 그 못지 않게 중요하고 훌륭한 변용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예수님의 밀알의 비유가 생각났다.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복음 12장 23~26)

 

예수님은 참 인간, 참 하느님이라 한다.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죄에서,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밀알의 비유에서 밀알은 당연히 예수님이다. 그러나 복음이 보편성을 갖는 이유는 이 밀알이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밀알은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한다. 내가 변하지 않고, 내가 썩지 않고, 내가 죽지 않고, 내가 사라지지 않고는 사랑을 할 수 없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이 되는 일이다. 그리하여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사랑은 곧 생성의 원인이며 시작이다. 친구가 말한 것은 바로 이거였을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성경을 단 두 글자로 요약하면? 사랑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배웠던,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가르쳤던 내용이다. 전지전능한 신으로서, 존재자로서,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신-하느님이 아니더라도 사랑의 하느님, 사랑 자체라면, 그래서 종교를 갖고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내 사랑의 마음을 키울 수 있다면 그것이 심층 종교 생활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은 '사랑하다 죽어 버려라'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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