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보물찾기/나는 사회 교사다.

[전문가 자문 요청 자료] 한국 교육 제도의 문제점

지지파 2023. 7. 2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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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도로서의 교육에 관하여 큰 틀에서 문제점을 지적하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한국의 교육 제도의 문제의 원인은 아무래도 입시 중심 교육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0년대 작은 학교, 혁신학교 모델은 매우 인기가 많았고, 한국 교육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좋은 대안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배움의 공동체, 거꾸로 수업, 배움 중심 수업, 민주시민교육, 수업 코칭, 수업 친구 등 의미 있는 교육 실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혁신학교를 무너뜨린 것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시험을 보는 시내 학교로 이사를 간다’는 소문(사실?)이었습니다. 혁신학교 출신들이 시험을 안보고, 시험공부를 할지 몰라서 고등학교에 가면 수능에서 밀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혁신학교 주변 집값이 오른다며 혁신학교를 유치하겠다던 분위기에서 오히려 혁신학교 지정 취소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게 됩니다.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지요. 입시를 건드리는 건 안 그래도 공정성과 관련하여 예민한 주제이기 때문에 입시 변화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감히 손을 못 대고 있는 듯합니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던 노태우 정부 때나, 논술 시험을 둘러싼 토론이 벌어진 노무현 정부,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경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입학사정관제 등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했던 시절이 지금보다 훨씬 건전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입시는 고등학교의 모든 교육과정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입니다. 고등학교를 특성화고와 일반계고로 크게 나눌 수 있다면 특성화고등학교는 직업 준비 과정이고, 일반계고는 일반교양을 배우는 과정일 것입니다. 일반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대학을 가던, 가지 않던 그것은 학생들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일반계 고등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은 모두 대학을 간다는 가정 아래 입시를 위한 수업을 합니다.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EBS 수능 특강이 전국 고등학교의 교과서가 된 것이지요.

2015 교육과정을 통해 진로 선택과목을 만들어 진로와 관련된 심화된 학습의 기회를 만들어도 ‘사회문제탐구’는 ‘사회문화 수능 준비’ 과목으로, ‘여행지리’는 ‘한국지리, 세계지리 수능 준비’ 과목으로, ‘고전과 사상’은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 수능 준비’ 과목으로 탈바꿈 되어 운영이 됩니다. 고3 수능 준비를 위해 대부분 고2까지 선택한 과목을 수능 과목으로 선택하고, 고3 때는 2학기 수능 준비를 위해 1학기까지 사교육을 동원하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으로 진도를 나갑니다. 2학기에는 수능을 위해 문제풀이 또는 자습 시간을 주어야 하니까요. 2학기 수업이 파행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저 역시 ‘2학기에는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은 자기 공부해도 좋으니 1학기는 제발 수업을 듣자’라고 애원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2학기에는 선택한 3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다른 학생들 자습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따로 앉아 수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2020년와 2021년에는 코로나로 출석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자, 각종 이유를 들어 등교하지 않은 학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2학기 수행평가도, 2학기 기말고사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입시랑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능이 끝난 다음에는 각종 이유로 체험학습을 내고 학교를 나오지 않고, 학교는 각종 편법을 동원해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도록 합니다. 어차피 관리도 안 되고, 배우는 것도 없고, 출석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배움’이라는 교육의 본질은 사라지고, 입시만 남은 고등학교의 모습입니다. 

특목고는 어떠합니까? 과학영재, 외국어 중심으로 국제 감각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특목고 역시 입시에 온 힘을 다합니다. 카이스트 등의 과학기술원에 진학하기 위해 과학고(영재고) 출신 학생들이 특목고에 들어가자마자 들었다고 하는‘너희는 특별한 것을 기대했겠지만 너희가 오늘부터 해야 하는 것은 대학을 위한 입시 준비다’라는 증언은 충격적입니다. 외국어고등학교 고3 심화 일본어 교재 역시 ‘수능 특강 일본어’입니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입시의 대의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편법은 정당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시험, 수행평가를 위해 사교육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자소서를 위해 컨설팅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수업 시간에 다른 과목 수능 과목을 공부해도, 인강을 듣기 위해 질병 결석을 내도 괜찮다는 것을 배웁니다. 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를 갖게 됩니다. 생기부 독서 기록란을 풍성하기 위해 1학기에 60권이 넘는 책을 독서기록장으로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봉사, 독서, 대회, 대외 활동, 동아리 등 교육적 가치가 있는 것들은 모두 입시를 위해 포장되어 왔으며 이제는 공정성을 위해 반영하지 않는 추세입니다. 결국 입시에 반영하지 않게 되자 학생들은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청소년기 가치있는 많은 활동이 이제는 입시에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할 필요가 없는 활동이 된 것이지요. 학교에서 교사들은 늘 학생들의 ‘다른 과목 선생님은 2학기 자습 시간 주시는데 선생님은 왜 수업해요?’, ‘왜 다른 과목 공부를 못 하게 하세요?’ 등과 같은 끊임없는 ‘왜요?’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염치와 도리가 학교에서 사라져갑니다. 학생들 탓이 아닙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분명 어른들이지요. 

이것은 그래도 입시가 의미있는 학생들 이야기입니다. 입시 경쟁에 참여하지 않은, 입시 경쟁에 소외된 학생들은 입시 중심 수업은 너무나도 의미없는 시간입니다. 그 학생들에게 그러려면 ‘특목고에 갔어야지.’라고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직업 기술은 배우고 싶지 않고, 대학은 아직 꼭 가야하는지 모르겠고, 그냥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도 아주 가끔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대학에 가려고 하는데 관심이 있어서 어떤 선택과목을 선택했는데 그 과목을 수능에서 선택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 고등학교 수업이 문제를 잘 푸는 것에 초점이 맞춰주어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국가 차원에서 만든 교육과정의 교육 목표가 수업을 통해 잘 실현되고, 학생들의 성장이 일어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육목표는 다 형식적인 것이고, 학생들의 성장은 시험 성적의 향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수능을 준비하던, 준비하지 않던 모든 학생들이 의미있는 배움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역시 입시와 관련이 있지만, 공교육이지만 사적 이익에(만) 기여하는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무상교육, 무상급식, 무상교복을 실시하고 있음에도 국가의 교육시스템 속에서 성취한 자신의 성공은 자신의 노력과 가족의 뒷받침 덕이라 생각하고,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에서 쉽게 벗어나려고 합니다. 당연히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하고, 그걸 왜 내가 해야 하냐, 내가 왜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와 같은 끊임없는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의사의 공급을 늘리지 않기 위해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하는 의사들과 의대생들의 모습이었죠. 국가는 국가의 유지와 국민의 복리 증진을 위해 어떤 인재를 얼마나 양성할지를 결정하고 그에 맞는 교육 제도와 시스템을 운영할 의무와 권한이 있습니다만, 공교육 체제에서 승리한 사람들에 의해 국가의 교육권이 침해된 초유의 사건이라 할 것입니다. 

학벌에 따라 취업과 소득이 달라지는 현실은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두가 인정하는 공정한 입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국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다양성과 기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수도권과 지방의 지역 해소를 위해 입시제도는 다양한 방법으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의대에 들어갈 학생을 추첨으로 결정하는 네덜란드나 유색인종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게 일정한 혜택을 주는 적극적 우대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 입시제도는 ‘공정’하면서도 ‘정의’로운 입시제도를 위한 노력일 것입니다. 공동체 문화 유산의 전달과 사회화 기능, 공동체 가치에 대한 공유, 공동체에 참여, 공동체가 부과한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같은 민주시민의 덕을 키우는 교육의 가치는 사라지고 오로지 공정한 입시, 선발의 기능만 남은 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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