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보물찾기/책에서 보물찾기

다시 사랑2.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노희경

지지파 2019. 8. 14. 10:57
반응형

시작은 언제나 엉뚱하다.

대만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고, 대만 여행 전 영화를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보았는데 사실 그냥 그랬고, '나의 소녀 시절'(our times, 2015)를 보았는데 역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s://st-oh.tistory.com/6

 

역시 사랑1-대만 영화 ‘나의 소녀 시대’(our times, 2015)

보통 이는 한 지역 1국개를 여행할 때면 습관처럼 그 나라의 영화를 보고 간다. 일본을 여행하기 전에는 일본 드라마, 예를 들어 히어로, 트릭 등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특별한 영화를 보고 가지는 않았다. 그러..

st-oh.tistory.com

그리고 떠오른 몇가지 시구들

'사랑하지 않은 자 모두 유죄'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나니~'

3가지 시구였다. 그리고 그 출처를 찾아 보려고 했는데 글쎄 노희경이 시인이 아니란다. 솔직히 고백하면 노사모로 유명한 노혜경과 혼돈을 했다. 그리고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가 아니라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였다. '지금 여기'라는 것은 실존의 표현이다. 상상도 의무도 과거도 아닌 살아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마침 밀리의 서재에 '지금, 사랑하지 않은 자 모두 유죄' 에세이집이 있어 읽었다. 

노희경은 성공한 드라마 작가이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도 그녀의 작품을 본 적이 없다.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우리 나라 드라마가 모두 막장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집에 텔레비전도 유선이나 IP를 신청한 적이 없고(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빠져살까봐 설치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냥 기본 채널만 보고 살았다. 드라마는 영어 공부한다는 핑계로, 일본어 공부한다는 핑계로 미드나 일드만 보았다. 책을 다 읽고 났더니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든다. 드라마를 보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드라마집 또는 소설집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인간과 사랑에 대해 연구하는 탐구하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노희경 작가는 미혼이다. 그렇다고 연애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에세이 첫 꼭지를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이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태어남, 아픈 성장 과정,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갈등과 화해, 자신과 같이 일을 했던 윤여정, 나문희, 한지민, 표민수에 대한 에피소드와 느낌을 진솔하게 표현한다. 그녀는 글을 잘 쓰는데(내가 드라마를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멋진 대사들, 명구들이 정리되어 있는 블로그가 있다. 또한 책 중간 중간 드라마의 명사가 간지로 나온다. 그런데 드라마의 이야기 구성, 대사도 잘 쓰겠지만 에세이도 잘 쓴다.) 그 글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 대한 탐구에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그녀는 스스로 드라마를 쓸 때의 자신의 마음가짐, 자세로 인간과 사랑에 대한 탐구를 강조했다.) 그녀의 글은 따뜻하고, 진솔하며, 지혜롭다. 그녀가 시간이 지나 원래 썼던 글에 대해 평가하고 지금의 생각을 덧붙인 것은 더욱 아름답다. 그녀가 썼던 '화양연가'(왕가위, 2000)에 대한 영화 평은 너무나도 와 닿는다. 

그녀는 불륜, 동성애, 그리고 어쩌면 사회 밑바닥일 수 있는 그래서 평범한 서민인, 또는 우울증 환자와 같은 정신 나간 사람들, 그래서 주변에서 만들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 모습에서 인간의 보편성을 찾고, 그래서 감동을 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손으로 한 자 한 자 박아 본다.

나는 한 때 전과자였으나 더 이상 죄를 짓고 싶지 않으므로.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 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 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은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 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아내는 끊임없이 나에게 물어본다. 

"자기 나 사랑해? 얼마나 사랑해?"

딸이 물어 본다.

"아빠 나 좋아? 얼마나?"

아들이 나에게 물어 본다.

"집사 나 좋냐?"

 

끊임없이 나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나는 

'못 쯥'(베트남어로 조금 이라는 뜻이다.)

'요만큼' 또는 '이만큼'(손으로 크게 원을 그리고 손끝을 가리킨다)라고 튕긴다.

튕기다 언젠가 튕겨지겠지. 

나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이에게 

사랑을 확인시켜주어야겠다.

사랑한다 말해야겠다.

당신들을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반응형